사다리 걷어차기,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선진국들의 속셈

지난 주말 이 책을 처음 집어들 때만 해도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움 속에서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집어든 것이 이 책이었는데 이 책은 결코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 장하준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에게 여러 경제 정책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런 모순들을 지적하기 위해 지난 몇 세기 동안 선진국들이 발전하는 과정과 그들이 사용했던 경제 정책들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선진국들은 과거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이룩하던 시기에 자신들이 지금 후진국들에게 강요하고 올바른 정책과 제도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을까? 과거 수 세기 동안 선진국들은 어떤 정책과 제도를 통해 지금과 같은 경제 발전을 이룩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왜 후진국들에게 자신들이 주장하는 몇몇 경제 정책과 제도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지금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정말 후진국들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들 때만 해도 책 제목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사다리를 걷어차다니? 이건 무슨 뜻일까?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이 책의 제목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24쪽.

저자는 책의 서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제부터 이 책에서 다뤄지는 것들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을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 이 책을 쓴 본인 자신의 고정관념도 허다하게 깨졌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 왔거나 굳게 믿어 왔던 무수한 통념들에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 몇몇 결론들은 독자들에게 도덕적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이 책을 통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는 역사적 관점을 간과하거나 도덕주의적 논쟁에 휘말려 오랫동안 의문시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인식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35쪽.

상당히 거창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도덕적 불쾌감'이라니! 이 책의 내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상당히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단편적으로나마 약간씩 알고 있던 사실들도 있었지만 아주 적나라하게 역사적 증거들을 들이대며 사실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선진국들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행태들이 괘씸하기까지 했다. 아! 난 아직 멀었어. 마음의 수양이 필요해.

이 책 중에 미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내용을 보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링컨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링컨은 노예해방의 아버지이다. 지금까지 난 순진하게 링컨이 정말 노예를 어여삐 여겨 노예 해방 선언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링컨은 노예 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하였지만 그렇다고 노예 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는 흑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보았고, 흑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정황들을 감안할 때 남부는 링컨의 노예 제도에 관한 입장보다는 그의 관세에 관한 입장에 대해 더 많은 염려를 했을 것이다. 실제로 링컨은 연방제의 존립을 위해서라면 남부의 노예 제도를 인정할 의사가 있음을 남북전쟁 기간 동안 명백하게 밝혔었다. 그러니까 1862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그의 도덕적 신념보다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62쪽.

하하! 그렇다고 해서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도 정치가이며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후진국일 때는 선진국이 되고자 별 짓을 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고 나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선진국들이다. 분명 그들 또한 후진국이었을 때가 있었고 어떻게 하면 후진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지는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들이 '따라잡기 기간'에 있는 동안 현 선진국들은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외국의 숙련된 노동 인력을 빼돌렸으며, 선진국들이 수출을 금지한 기계를 밀수입하였고, 산업스파이를 고용하는가 하면, 다른 국가들의 특허권 및 상표를 계획적으로 도용하였다. 그러나 일단 자신들이 선진국의 대열에 오르면 자유 무역을 주장하고, 숙련된 노동 인력 및 기술의 유출을 금지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허권 및 상표를 강력히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한때 도둑질을 일삼던 이들이 하나씩 차례로 파수꾼이 된 것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124쪽.

가볍게 읽고자 읽기 시작한 책이 점차 무겁게 다가왔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실들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빗대어 보니 씁쓸하기만 했다. 세상에 정말 선한 나라는 없는 걸까. 다른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떠벌리지만 결국 그건 자신들을 위한 것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는 나라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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