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에 해당되는 글 2

  1. 2011.03.09 사다리 걷어차기,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선진국들의 속셈
  2. 2011.03.07 인생은 사십부터, 새로운 인생을 위한 길잡이 (2)

사다리 걷어차기,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선진국들의 속셈

지난 주말 이 책을 처음 집어들 때만 해도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움 속에서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집어든 것이 이 책이었는데 이 책은 결코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 장하준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에게 여러 경제 정책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런 모순들을 지적하기 위해 지난 몇 세기 동안 선진국들이 발전하는 과정과 그들이 사용했던 경제 정책들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선진국들은 과거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이룩하던 시기에 자신들이 지금 후진국들에게 강요하고 올바른 정책과 제도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을까? 과거 수 세기 동안 선진국들은 어떤 정책과 제도를 통해 지금과 같은 경제 발전을 이룩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왜 후진국들에게 자신들이 주장하는 몇몇 경제 정책과 제도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지금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정말 후진국들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들 때만 해도 책 제목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사다리를 걷어차다니? 이건 무슨 뜻일까?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이 책의 제목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24쪽.

저자는 책의 서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제부터 이 책에서 다뤄지는 것들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을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 이 책을 쓴 본인 자신의 고정관념도 허다하게 깨졌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 왔거나 굳게 믿어 왔던 무수한 통념들에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 몇몇 결론들은 독자들에게 도덕적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이 책을 통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는 역사적 관점을 간과하거나 도덕주의적 논쟁에 휘말려 오랫동안 의문시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인식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35쪽.

상당히 거창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도덕적 불쾌감'이라니! 이 책의 내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상당히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단편적으로나마 약간씩 알고 있던 사실들도 있었지만 아주 적나라하게 역사적 증거들을 들이대며 사실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선진국들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행태들이 괘씸하기까지 했다. 아! 난 아직 멀었어. 마음의 수양이 필요해.

이 책 중에 미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내용을 보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링컨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링컨은 노예해방의 아버지이다. 지금까지 난 순진하게 링컨이 정말 노예를 어여삐 여겨 노예 해방 선언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링컨은 노예 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하였지만 그렇다고 노예 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는 흑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보았고, 흑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정황들을 감안할 때 남부는 링컨의 노예 제도에 관한 입장보다는 그의 관세에 관한 입장에 대해 더 많은 염려를 했을 것이다. 실제로 링컨은 연방제의 존립을 위해서라면 남부의 노예 제도를 인정할 의사가 있음을 남북전쟁 기간 동안 명백하게 밝혔었다. 그러니까 1862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그의 도덕적 신념보다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62쪽.

하하! 그렇다고 해서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도 정치가이며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후진국일 때는 선진국이 되고자 별 짓을 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고 나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선진국들이다. 분명 그들 또한 후진국이었을 때가 있었고 어떻게 하면 후진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지는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들이 '따라잡기 기간'에 있는 동안 현 선진국들은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외국의 숙련된 노동 인력을 빼돌렸으며, 선진국들이 수출을 금지한 기계를 밀수입하였고, 산업스파이를 고용하는가 하면, 다른 국가들의 특허권 및 상표를 계획적으로 도용하였다. 그러나 일단 자신들이 선진국의 대열에 오르면 자유 무역을 주장하고, 숙련된 노동 인력 및 기술의 유출을 금지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허권 및 상표를 강력히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한때 도둑질을 일삼던 이들이 하나씩 차례로 파수꾼이 된 것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124쪽.

가볍게 읽고자 읽기 시작한 책이 점차 무겁게 다가왔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실들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빗대어 보니 씁쓸하기만 했다. 세상에 정말 선한 나라는 없는 걸까. 다른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떠벌리지만 결국 그건 자신들을 위한 것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는 나라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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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십부터, 새로운 인생을 위한 길잡이

불혹,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이 책은 저자가 1929년부터 시작된 미국 대공황으로 인해 극심한 경제불황과 사회혼란을 겪은 중년들을 대상으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해온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극심한 변화의 시기를 겪고 혼란에 빠져있던 마흔 이후의 중년들에게 그는 '새로운 삶의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들려주었고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주제이다.

1930년대 미국과 현재의 우리나라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약간의 차이로 인해 이 책의 내용 중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도 있지만 그 정도야 시대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것이니 가볍게 넘어갈 수 있으리라.

그런데 왜 하필 마흔 살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이 될 때까지는 이렇다 할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 그때까지는 세상이 그 사람의 역량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타고난 그릇에 걸맞은 자리를 내어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마흔이 가까워오면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또한 <생각>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훌륭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사람들이 이제 막 힘을 얻고 자신을 파악하기 시작하는 나이인 것이다.

<인생은 사십부터>, 월터 B. 피트킨 지음, 김경숙ㆍ정해영 옮김, 사이, 2007년 3월, 87쪽.

저자는 사람이 자신을 파악하기 시작하는 나이를 마흔이라고 보고 있다. 그게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은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 40대가 되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마흔 이전에는 그저 세상의 흐름 속에서 휩쓸리며 살아가게 되지만 자신을 파악하게 되면서부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마흔 이후에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행운은 오로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영리한 사람들은 오래 사는 법을 배운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 자신도 딱히 즐거울 것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도 않는, 특징도 없는 타성적인 일을 계속하며 살아간다. 자유란 오직 자유로운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권력은 권력 있는 자들의 것이듯, 삶이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인생이 마흔에 시작되는 것은, 뭔가 전념할 것을 찾고 살아갈 방도를 추구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삶은 공허할 뿐이다. 나약한 자들에게 마흔 이후의 삶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자각일 뿐이다. 하지만 생기 넘치고 활기찬 사람에게 마흔 이후의 삶은, <서곡이 끝나고 보다 위대한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인 것이다.

<인생은 사십부터>, 월터 B. 피트킨 지음, 김경숙ㆍ정해영 옮김, 사이, 2007년 3월, 99쪽.

그렇다면 마흔 이후에 인생을 제대로 시작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냥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마흔이 넘어서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인생을 마흔부터 시작하려면 자신의 '소망'이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 사십에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정도도 모른다면 인생을 시작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무엇을 소망하는지 아는 것이 그 소망을 이루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신의 소망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당신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

<인생은 사십부터>, 월터 B. 피트킨 지음, 김경숙ㆍ정해영 옮김, 사이, 2007년 3월, 55쪽.

목표가 없는 삶은 공허한 삶이다. 인생을 살면서 바라는 것이 없다면 다른 여건이 갖춰진다고 하더라도 무의미한 삶이 되지 않을까.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아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소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고 그걸을 이루기 위한 기반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이 '언어와 논리의 숙달'이다.

따라서 제대로 삶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우리는 제대로 <읽고>, 정확한 의미로 <쓰고>, 자신의 뜻을 명료하게 <말하고>, 사려 깊게 <관찰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지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언어와 논리의 숙달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대단히 쉽게 만든다. 예를 들어 명석한 교사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어린 제자들을 가르치는 반면, 입만 열면 허튼 소리를 하는 산만하고 서툰 교사는 단 1센티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지루하게 긴 길을 돌아간다. 이는 다시 말하면,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단 10분 만에 이야기를 끝내지만, 수다쟁이는 씩씩거리며 한 시간을 질질 끈다는 뜻이다. 모든 수준 높은 일들이 다 그렇다. 근본적인 것을 정복한 자들은 평탄한 길을 여행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로, 평균 수준의 사고력과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보다 열 배 이상의 성과를 올린다.

<인생은 사십부터>, 월터 B. 피트킨 지음, 김경숙ㆍ정해영 옮김, 사이, 2007년 3월, 62쪽.

이처럼 '언어와 논리의 숙달'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며 이를 제대로 숙달한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성과는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흔 이전의 경험들이 마흔 이후의 삶을 결정 짓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간절히 원하고 거기에 필요한 준비를 한다면 우리는 마흔 이후에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이제서야 겨우 다 읽었다. 게을러진 탓이 크겠지만 왠지 매끄럽지 못한 번역도 한 몫 한 것 같다. 책의 내용에 비해 번역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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