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남자들

아, 진심으로 이 책을 쓴 후쿠오카 신이치와 번역한 김소연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전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크게 실망했던 탓인지 생명과학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겁이 났었는데, 이 책은 이런 나의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이 책의 번역은 잘 되어 있어 글쓴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전달한 듯 싶다. 원서를 보지 않았으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 번역이라면 원문에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에 대해 유전자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자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유전자 측면에서 바라본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명쾌하게 알려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우리가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이나 과학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과학이나 유전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읽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보통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는 생명과학 지식이나 현미경으로 들여다 봐야 보이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 등 다른 이야기들을 함께 써놓아 책을 읽는데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성경에 보면 남자인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인 이브를 만들었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 잘못된 말이다. "남자는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남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여성이며 필요에 의해 여성으로부터 "모자란 남성"이 나타나게 되고,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후 분열하는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에 의해 여성이 남성으로 바뀌게 된다.

책에서는 이런 사실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특정 유전자를 발견하기 위한 지식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 즉 현미경에 대한 이야기와 어떻게 정자를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고 염색체를 관찰하는지, 염색체는 어떻게 생겼으며 DNA는 어떤 구조로 어떻게 유전 형질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지 등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고등학교 생물 시간 이후 처음으로 들어본 것들이었고 유용한 과학 상식을 알게 해주었다.

… 포르말린의 실체는 가교제(架橋劑), 혹은 고정제라 불리는 화학 물질이다. 마이크로 차원에서 짧은 막대기의 양 끝에 빨래집게 같은 고정기구가 장착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세포 안팎의 곳곳으로 스며들어 양 끝에 달린 빨래집게를 이용해 세포를 닥치는 대로 꼭꼭 집어준다. 이 고정기구는 실제 빨래집게와는 달리 불가역, 즉 한 번 집으면 두 번 다시 풀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세포를 구성하는 모든 분자의 틈이 전후좌우, 상하로 연결 고정된다. 즉 가교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깨지기 쉽고 정교한 세포의 구조를 보존하고 보강한다.

모자란 남자들,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9년 11월, 56쪽.

그리고, 현대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인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를 밝혀낸 과학적 방법에 대한 설명도 있다.

… 미토콘드리아 DNA의 분석은 1980년대 말에 하나의 아주 뚜렷한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성의 기원은 10여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한 여성임이 밝혀진 것이다. 놀랍게도 Y염색체의 다형 분석 역시 거의 같은 사실을 드러냈다.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성의 기원은 10여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한 명의 남성에게서 유래한다는.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 남자와 여자가 아담과 이브이며 그 둘의 자식들이 우리 모두의 조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토콘드리아를 근거로 한 모계 분석과 Y염색체를 근거로 한 부계 분석은 같은 시기, 같은 장소로 수렴되지만 그 둘은 독립된 자료이며 양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결정적인 무언가를 제시할 수 없다.

모자란 남자들,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9년 11월, 178쪽.

남성이 남성이 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부족함, 생명체의 기본 사양인 여성으로부터 생겨난 남성이 여성에 비해 기능적으로 모자랄 수 밖에 없는 이유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후쿠오카 신이치는 책의 뒷부분에서 이 내용들을 정리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 생명의 역사에서 수컷은 암컷이 낳은 '운반자'에 지나지 않는다. 암컷에게서 암컷으로, 생명은 긴 시간 동안 모계라는 날실만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날실과 날실을 이어주고 정보를 교환하며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 변화는 변화하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용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선택압(選澤壓)이 작용한 결과 암컷의 유전자를 다른 개체의 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운반자'로서 수컷이 만들어졌다. 그때까지 기본 사양이었던 암컷의 몸에 변화가 생기면서 수컷이 태어났다. 수컷의 신체 시스템에는 급조에 따른 부정합과 오류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암컷에 비해 안정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명이 짧고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우며, 정신적ㆍ신체적 스트레스에도 취약하다. 그래도 수컷은 씩씩하게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모자란 남자들,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9년 11월, 216쪽.

다소 놀라운 사실이었다. 남자의 평균 연령이 여자보다 낮은 것 또한 모자라기 때문이다. 여러 영향이 있기는 하겠지만 남자의 자살률이 더 높은 것도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모자람에 기인한다는 것은 이런 사실에 비추어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쓴 후쿠오카 신이치의 글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과학자나 공학자가 쓴 책은 딱딱할 수 밖에 없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것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이다. 그래!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과연 노력한다고 가능한 걸까? 후쿠오카 신이치가 쓴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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