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그윽한 수채화 같은 산골 이야기!

각박한 이 세상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아직 이런 곳이 있으며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런 삶을 느낄 수 있음이 정말 고맙다.

나 또한 넉넉하고 여유로운 전원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도시 생활이 힘들고 각박하게 느껴질 때면 살며시 고개를 드는 이 생각을 아직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난 용기가 없어 아직 이 회색빛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과감히 도시를 벗어나 강원도 산골 마을에 정착을 하고 살아가는 이하영님의 글을 읽으니 참 대단하다 싶다. 그것도 세쌍둥이를 데리고 연고도 없는 그곳에 들어가 살 생각을 하다니!

숲에서의 삶은 과연 어떨까? 책에서 읽은 것마냥 그저 낭만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도시에서의 척박한 삶에 비하면 훨씬 나을 것 같다. 김하영님의 책의 읽으며 숲에서의 삶을 동경해보지만 아마 나 같이 게으른 사람은 그 속에서의 삶이 순탄치 않을 성 싶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변화가 눈에 보이는 곳에서 아이들과 자연과 더불어 넉넉하게 산다는 것, 어쩌면 평생 이루지 못할 꿈일지도 모르겠다.

한 폭의 그윽하고 잔잔한 수채화를 본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간드러지게 쓸 수 있을까. 똑같은 말이라도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떤 표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말을 느낌은 달라질 것이 분명한데 김하영님의 글은 나 같이 정서가 메마른 사람은 쓸 수 없는 그런 글일 듯 싶다.

… 그리고 마침내 곰배령 야생의 화원, '꽃자리'에 오른다. 물소리를 뒤로 하고 하늘이 닿은 능선에 올라서면 탄성이 절로 난다. 그야말로 천상천하 '풀꽃'독존 야생화의 향연. 이미 꽃은 지천이다. 부엽토 사이 애기앉은부채가 수줍은 호기심으로 고개를 내밀고, 산야신의 옷자락을 연상시키는 주홍의 동자꽃이 해말간 미소를 짓는다. 동자꽃은 다섯 개의 하트 모양 꽃잎으로 이루어진 사랑스런 오심화이다. 분홍의 작은 꽃 둥근이질풀은 끝없이 군락을 이루고 나리꽃송이는 우아한 자태를 마음껏 뽐낸다. 곰배령 꽃자리에는 구릿대와 어수리 들이 흰 구름처럼 떠있다. 날아갈 듯한 승마와 바람꽃 무리에 마음 씨앗은 비상의 춤사위를 짓는다. 영아자와 꼬리풀 들은 제 빛깔의 꽃대를 신비롭게 드리우고, 노랑의 뱀무와 양지꽃도 다시 피어나기를 잊지 않았다. 참취들이 옹기종기 사랑스런 꽃망울을 달았다. 여린 노랑의 좁쌀풀꽃도 꽃술에 붉은 구슬을 물고 나를 향해 웃는다. 나직하니 꿀풀은 짙은 보랏빛 숨을 토해낸다. 이 높은 곳까지 어찌 오르셨는지 아랫녘에서 보던 질경이, 토끼풀, 넓은잎외잎쑥 들의 존재는 이채롭기까지 하다. 깊은 눈 속에서 긴 겨울을 난 식물이 피워낸 꽃에는 태양이 내어진 빛의 정수가 아낌없이 들어차있다. 흐르는 꽃, 흐르는 바람이 어울린 오묘한 조화장이다. … 직녀가 직조한 위대한 꽃 양탄자 위로 경우의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듯도 하거니와 하늘의 갸륵한 별무리 은하수마저도 밤이면 이슬로 내려앉아 꽃들에게 입맞추는 천상의 화원, 그곳 곰배령을 '풀꽃세상'이라 부른다.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이하영 지음, 효형출판, 2010년 2월, 162쪽.

위 글을 보면 온갖 풀꽃들의 이름들이 나온다. 저 이름들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랍고 꽃을 보고 그 이름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숲에 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일까? 그건 당연히 아닐터이니 김하영님이 숲에서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풀꽃들의 모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교 국어책에서 봤던 어느 수필 이후로 이렇게 감칠맛 나는 문장들을 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만큼 내가 딱딱한 삶을 살고 있고 딱딱한 글만 보고 있다는 말이 될테고 누군가의 말씀처럼 이제는 부드러운 글도 많이 보려 노력해야겠다.

책에서도 여러 차례 나오지만 숲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역시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다. 특히 도시 생활에 젖어있던 몸을 이끌고 숲에 들어가 산다는 것은 이런 싸움의 연속이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몸이 고단하고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껴지면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테고 그럴 때마다 힘겨운 싸움을 하지 않을까. 이런 싸움에서 굳굳히 버티며 아직도 곰배령 숲을 지키고 있는 이하영님은 대단한 여장부이다!

아마도 숲에서 살다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가지게 될테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많은 생각을 하게 되겠지. 생각이 바르고 긍정적이라면 이런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과 숱한 싸움을 해대느라 힘들 것 같다. 책을 보면 이하영님은 그래도 좋게 생각을 하는 편이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그 삶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닌 듯 싶다. 어찌 사람이 살면서 항상 좋기만 하겠는가.

고즈넉한 가을 숲을 혼자 오르는 건 무척 오랜만이다. 나무들 사이로 풀 사이로 걸었다. 굽이치고 오르고 내리고 휘돌며. 하나도 생김이 같지 않은 돌맹이들을 밟으며. 어느만큼 오르자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이 아랫배에서 꿈틀거렸다. 숲의 정령이 느껴졌다. 나는 하나의 숲, 하나의 식물과 다르지 않았다. 제 생긴 모양대로 아름다운 식물처럼 제 생긴 모양대로 아름다운 나, 오솔길을 걸으며 '사느라 무척 바빴던 나'를 만나 흔쾌히 악수를 청했다. 개울을 건너며 '사느라 주야로 동동거리던 나'를 만나 꼭 안아주었다. 바위에 앉아 잠시 쉬어가며 '사느라 정신없었던 나'를 만나 가만히 등 두드려주었다. 사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나의 고단함 위로해줄 자는 바로 나, 나를 사랑해줄 자도 바로 나, 나를 인정해줄 자도 바로 나. 마음에 강 같은 평화가 물결쳤다.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이하영 지음, 효형출판, 2010년 2월, 223쪽.

치열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도시에 살건 숲에 살건 바다에 살건 어디서나 사는 것은 치열하고 힘들다. 하지만 그 속에서 순응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도 아름답게 살고 싶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던 그곳에서 사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준 김하영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꼭 언젠가는 곰배령처럼 넉넉한 곳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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