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해당되는 글 5

  1. 2010.04.15 신도 버린 사람들, 신을 버린 사람들! (4)
  2. 2009.10.21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5)
  3. 2009.10.20 초등학생도 중간고사를? (12)
  4. 2009.09.10 아이를 낳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 (10)
  5. 2009.06.07 인간과 침팬지

신도 버린 사람들, 신을 버린 사람들!

거침 없이 읽어내려갔다. '신도 버린 사람들'이 왜 신을 버리게 되었는지 그 여정은 참 멀고도 험했다. 사람이 사람을 천대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회신분제도,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이런 사회신분제도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라졌지만 인도에서는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뿌리 깊은 인도의 사회신분제도, 즉 카스트 제도 속에서 굳건히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고 천대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었던 사회제도였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문명화가 이루어지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빠른 속도로 없어졌다. 교육이 이러한 신분제도가 사라지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문명화가 덜 된 사회일수록 이런 신분제도가 유지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생활의 근간이 되었던 신분제도는 인간의 본성마저 참담하게 짓밟았다.

이 책의 지은이 나렌드라 자다브는 인도의 경제학자이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인도중앙은행 수석경제보좌관을 지냈으며 국제통화기금 등 세계기구에서 활동하였다. 이 책이 출간될 즈음에는 인도의 유명 대학 중 하나인 푸네 대학의 총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세계 언론에서는 그를 향후 인도를 이끌어갈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인도에서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달리트 출신이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 보면 네 가지 등급의 신분이 있다. 가장 상층의 브라만과 그 아래에 있는 크샤트리아와 바이샤, 그리고 노예계급인 수드라가 있다. 나렌드라 자다브의 조상들이 속한 달리트는 이 네 개의 계층에도 속하지 못하는, 즉 노예계급인 수드라보다도 낮은 계층이다.

기원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힌두경전 <리그베다>는 인간의 계급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언급하였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 푸루샤가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창조했는데, 푸루샤의 입은 사제인 브라만이 되었고 팔은 군인계층 크샤트리아가 되었다. 허벅지에서는 상인계급 바이샤가, 두 발에서는 노예인 수드라 계층이 탄생하였다.  이 네 계급은 색깔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르나 제도, 곧 사성제라고 불린다. 그리고 사성제에 들지 못하여 '아웃 카스트'라고 불리는 불가촉천민이 있었다.  그들은 수드라보다 더 낮은 최하층민이었다.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김영사, 2007년 6월, 9쪽.

이런 인도의 사회신분제도는 인도인의 상당수가 믿고 있는 힌두교의 경전에 나와있기 때문에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지난 3500년 동안 이를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보다도 더 업신여김을 받았던 달리트 사람들. 어떻게 그들 중에서 인도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인정 받는 사람이 나올 수 있었을까.

1950년 인도 헌법에서는 이런 사회신분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했던 제도가 하루 아침에 없어질 수 있겠는가. 인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런 신분제도가 존재했고 생활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만났던 인도 사람들 중에는 브라만 계층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행동거지와 말투에서는 이런 사회계급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달리트의 사회적 독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인도 헌법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였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교육하고, 단합하고, 궐기하라"라고 외치며 달리트 운동을 이끌었고 달리트의 정치세력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달리트를 무시하고 외면했던 간디와 숱한 충돌이 있었다. 보통 간디라고 하면 인도의 무폭력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존경 받고 있지만 달리트들에게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달리트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뿌리 깊은 힌두교의 전통을 꺽지 못하고 결국 불교로 개종하게 된다. 신도 버린 달리트는 결국 자신들의 신을 버린 것이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수백만 달리트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 중에는 이 책의 지은이 나렌드라 자다브의 아버지 다모다르 룬자지 자다브도 있었다. 이 책은 다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다모다르 룬자지 자다브와 그의 아내인 소누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살아왔던 20세기 초반의 인도는 다른 많은 아시아의 나라들처럼 큰 사회적 변혁이 있었고 그 소용돌이 속에는 힘겹게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온 다무와 소누가 있었다.

달리트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에 맞서며 살아온 다무와 소누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전통과 종교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들의 신세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암베드카르 박사가 주장했던 것처럼 끊임없이 자식들의 교육에 온 힘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 부족할 것이다. 어찌 그들의 고통과 번민을 책을 읽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막연히 알고 있었던 인도의 사회신분제도 카스트, 그리고 이를 깨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 않은 계급제도가 있었고 달리트처럼 천대 받으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지라도 그들의 삶의 조그만 부분이라도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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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세상에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천재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특별한 이야기들을 남겨놓았는데, 리처드 파인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리처드 파인만은 기발한 사고와 행동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물리학자이다. 이 책은 이러한 기발한 생각과 행동들을 리처드 파인만이 직접 쓴 책이다.

이 책은 총 2권으로 이뤄져있으며 첫 번째 책은 어린 시절에서부터 MIT, 프린스턴 대학원 시절, 세계2차대전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두 번째 책은 코넬대학과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천재들에게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뭔가가 있기에 그들이 천재라고 불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그런데, 이 책에 나온 파인만의 이야기를 보면 꼭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도 분명 사람이고, 고민을 갖고 있으며, 인생을 즐기고 싶어하고, 때로는 아파한다.

아무래도 물리학자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쓴 책이라 책 내용 중에 물리학에 대한 내용들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이 내용들을 모른다고 해서 책 읽는데 불편하거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이런 물리학에 대한 내용들이 참 재미있었다. 어떤 물리학 법칙을 하나 발견해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며, 하늘에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현상이나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번뜩이는 재치, 혹은 주위의 조언 덕분에 부딪힌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다.

이 책의 두 번째 권에 나오는 브라질의 교육 문제에 대한 것은 우리나라와 완벽하게 같다! 아마 지금의 우리나라에 파인만이 온다면 브라질보다 더 놀라운 학생들과 교육 환경에 대해 놀랄 것이다. 학생들은 뭔가를 많이 알고 있지만,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 우리나라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알지만 모른다는 것, 참 슬픈 일이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 이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리 무겁지 않게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들로 가득 채운 책. 천재들은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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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도 중간고사를?

언제부터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게 되었을까? 찾아보면 나오기는 할텐데 찾아보는 것이 귀찮은 관계로 그냥 넘어가도록 하고 … 분명 초등학생들은 시험을 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또다시 초등학생들도 시험을 보기로 한 모양이다.

지난 주말 집에 갔더니 달력에 적혀 있는 빨간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간고사" 음? 누구의 중간고사? 알고 보니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중간고사가 다음 주 수요일이라는 것이다.허허~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중간고사를?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나?

우리가 어릴 적, 우리는 학생이 아니라 시험 보는 기계였다.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보는 기술을 익히고 배워왔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시험 성적은 좋을 지 모르지만, 머리 속에 든 것은 없다. 아니, 머리 속에 든 것은 많을 지 모르지만, 그걸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 지 알지 못한다.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머리 속에 든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고,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 정책을 바꾸지 않았었나? 그런데, 이제 또다시 아이들을 시험 보는 기계로 만들려는 참인가? 도대체 … 왜 이렇게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게 되었는 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시험 보는 기계로 만드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자연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한 걸까?

물론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성취욕을 올려주고 동기를 제공해준다는 면에서 시험이란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게 한다는 것은 그 시험 결과를 가지고 아이들을 줄 세우겠다는 말이 되고, 그럼 어떤 부모가 마음 편히 아이들의 시험을 바라볼 수 있을까.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아이들의 시험은 아이들만의 시험이 아니고, 부모들의 시험, 어른들의 시험이다.

난 항상 아이가 어떤 시험 성적을 가지고 오든 신경 쓰지 않으리라 마음을 굳게 먹는다. 그런데, 분명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아이가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그걸 들고 오면 구박하던 칭찬하던 했던 것처럼, 분명 이번 시험 결과를 가지고도 아이에게 구박을 하던 칭찬을 하게 될 것이 뻔하다.

슬픈 현실, 불쌍한 아이들. 제발 우리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내버려 둘 수는 없을까. 난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시험을 잘 보는 것보다, 받아쓰기를 잘 하는 것보다, 밝고 건강한 것이 더 좋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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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

우리나라 국민들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고 태어나는 아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큰 일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노동인구가 줄어들어 경제에 문제가 된다고 하고, 심지어 징병 대상자가 줄어들어 국방에 필요한 병력을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이게 다 무엇 때문인가?

한쪽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연일 홍보를 하고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까? 아무리 아이 많이 낳으라고 떠들어봐야 아이를 낳기만 하면 정부에서 알아서 키워주는 것도 아닌데 누가 낳을려고 하겠는가.

요즘 아이 하나 키울려면 아무리 적게 들어도 한달에 50만원, 100만원은 금방이란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사교육비로 한달에 400-500만원을 쓴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아이를 낳겠는가? 국가 보조금을 줄테니 아이 많이 낳으라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나도 이거 받아보려고 해봤지만, 이거 받을 수 있는 가계 소득은 현실성이 없다.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기도 힘든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예전에야 낳아만 두면 알아서 컸다고 하지만, 요즘은 어디 그런가. 난 절대 아이에게 과도한 사교육을 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직도 어린 아이들을 학원 몇 군데씩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평생 집 한채 가지지도 못할테고 어떻게든 살아갈려면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데, 부모가 둘 다 돈 벌러 나가면 우리 애들은 누가 봐주는가?

그렇다. 부모들은 눈물을 머금고 어린 아이들을 놀이방이나, 유아원, 유치원, 학원에 보낸다. 그럼 이런 돈은 누가 주는가? 병설 유치원이 싸니까 거기 보내라고? 젠장! 병설유치원의 모집인원은 아주 적고 경쟁률이 치열해서 여기 넣으려면 어떤 곳은 1-2년은 기다려야 한단다. 그리고 유치원비가 싸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이사를 가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자리가 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설 유치원을 보내는데 여기 유치원비는 만만치 않다. 이게 보통 서민들의 생활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이런 걱정은 없겠지. 돈 걱정 없이 환경 좋은 유치원이나 학원에 보내겠지. 하지만, 이렇게 돈 걱정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 대다수의 서민들은 맞벌이 해도 아이 키우다보면 돈 모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돈 없으면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원 보내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할 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정말 돈 없는 사람들은 이런 곳에 보내지도 못한다. 그러니 부모들이 돈 벌러 나가고 어린아이들끼리 집에 있다가 사고가 나는 것이지. 이런 부모들은 피눈물 흘린다. 돈 없는 죄로 자기 자식이 죽었는데 어찌 피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맞벌이 하지 말고 집에서 아이들 돌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론 가능하다. 절약하고 절약하고 절약해서 한 사람이 번 돈으로 서너명의 가족이 먹고 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딱 여기까지다. 아이 한 명, 많아야 두 명. 그럼 그 이후에는? 언제 돈 모아서 집 장만하고 여유롭게 살란 말인가? 보통 사람들도 돈 모아서 내 집 장만한 후에 여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아이들 교육도 문제다.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면 되겠지만, 보통 사람이 보통 아이를 집에서 가르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가 알아서 잘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냥 너 팔자니까 알아서 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면서 학교에서는 몇 달 뒤에 배울 내용을 다 배워서 오는데 그런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뒤처질 수 밖에 없다. 요즘 학교에서는 워낙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울 것들을 다 배워서 오니 수업은 대충 한다고 하더라. 다 알지? 네~ 그럼 넘어가고! 그럼 사전에 배우지 않은 아이들은? 젠장!

조카 녀석을 보니까 중간고사 있기 한 달 전부터 중간고사 준비반이라고 있어서 중간고사 준비를 하더라. 이런 학원들은 각 학교별로 기출문제들을 정리해서 문제풀이 중심으로 수업을 한다. 그러니 당연히 아이들 성적이 오를 수 밖에.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어주니 시험은 잘 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상대적으로 이런 학원을 다니지 않은 아이들은 성적이 떨어질 수 밖에 없으리라. 이런 학원 다니지 않고도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더라만, 내 자식이 이런 아이들 중 한 명이라면 무슨 걱정을 할까.

아이 낳으라고 말만 하지 말고, 멀쩡한 강바닥이나 보도 블럭 파헤치지 말고, 제발 애들 교육이나 보육하는데 투자해라. 제발 부탁이다.

멀쩡한 강들 헤집는 돈으로 아이들한테 투자하면 누가 아이를 낳지 않겠는가?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귀찮아서 아이 낳지 않는다는 사람보다 키울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낳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집안에 아이들이 북적북적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만 있다면 낳지 말라고 해도 낳는다.

부모가 집에 없어도 걱정 없이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곳, 문제풀이 학원 같은 곳에 보내지 않아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 이런 것들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 아닌가? 아이 낳으라고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가? 국민들 세금 걷어다 멀쩡한 땅 파헤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가?

우리 아이들에게 참 미안하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못난 부모 만나서 너희들이 고생이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너희들은 나중에 아이들 낳지 말아라. 아마 너희들이 아이 낳을 때가 되면 이보다 더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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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침팬지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차 차이는 약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인간과 침팬지와의 차이는 침팬지와 고릴라와의 차이보다 더 작다.

(c) Aaron Logan via http://www.lightmatter.net/gallery/Animals/chimp


실제 생활 모습을 보면 다른 동물보다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동물적인 서열 관계보다는 인간의 사회 활동과 비슷한 점도 많이 보인다. 이 모습들 중에 새끼를 극진히 보살피는 모습이나 연장자에게 혼 나면서 교육을 받는 모습 등을 보면 침팬지에게서 인간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어른 침팬지는 어린 침팬지들이 심한 장난을 치더라도 묵인한다. 어지간하면 어린 침팬지가 심한 장난으로 어른 침팬지를 괴롭히더라도 그냥 묵묵히 참아준다. 하지만, 이런 장난이 더 어린 새끼에게 향한 경우에는 혼을 내서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가르친다. 교육의 중요성을 침팬지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무리의 영속성을 위한 것이리라.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무리 내에서 서열이 높다고 하더라도 다른 침팬지가 들고 있는 음식을 빼앗지 않는다. 보통 동물이라면 서열이 높은 녀석들이 먼저 먹고 남은 것을 서열에 따라 나눠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것은 상당히 놀라운 이야기였다. 덕분에 침팬지는 늙은 침팬지도 별 어려움 없이 무리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인간 사회에서 노약자를 보호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인 활동을 침팬지들도 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동물들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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