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72

  1. 2011.03.09 사다리 걷어차기,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선진국들의 속셈
  2. 2011.03.07 인생은 사십부터, 새로운 인생을 위한 길잡이 (2)
  3. 2010.12.20 피드백 이야기, 인생을 바꾸는 피드백
  4. 2010.05.26 사막별 여행자, 사막의 어린왕자 (4)
  5. 2010.04.28 양육쇼크, 아이를 키우는 방법! (2)
  6. 2010.04.16 칼의 노래, 장군의 고뇌 (6)
  7. 2010.04.15 신도 버린 사람들, 신을 버린 사람들! (4)
  8. 2010.04.08 위풍당당 개청춘, 아직은 젊은 20대가 바라본 세상! (4)
  9. 2010.03.30 왜 일하는가, 일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 (4)
  10. 2010.03.25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그윽한 수채화 같은 산골 이야기! (2)

사다리 걷어차기,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선진국들의 속셈

지난 주말 이 책을 처음 집어들 때만 해도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움 속에서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집어든 것이 이 책이었는데 이 책은 결코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 장하준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에게 여러 경제 정책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런 모순들을 지적하기 위해 지난 몇 세기 동안 선진국들이 발전하는 과정과 그들이 사용했던 경제 정책들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선진국들은 과거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이룩하던 시기에 자신들이 지금 후진국들에게 강요하고 올바른 정책과 제도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을까? 과거 수 세기 동안 선진국들은 어떤 정책과 제도를 통해 지금과 같은 경제 발전을 이룩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왜 후진국들에게 자신들이 주장하는 몇몇 경제 정책과 제도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지금 선진국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정말 후진국들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들 때만 해도 책 제목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사다리를 걷어차다니? 이건 무슨 뜻일까?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이 책의 제목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24쪽.

저자는 책의 서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제부터 이 책에서 다뤄지는 것들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을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 이 책을 쓴 본인 자신의 고정관념도 허다하게 깨졌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 왔거나 굳게 믿어 왔던 무수한 통념들에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 몇몇 결론들은 독자들에게 도덕적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이 책을 통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는 역사적 관점을 간과하거나 도덕주의적 논쟁에 휘말려 오랫동안 의문시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인식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35쪽.

상당히 거창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도덕적 불쾌감'이라니! 이 책의 내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상당히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단편적으로나마 약간씩 알고 있던 사실들도 있었지만 아주 적나라하게 역사적 증거들을 들이대며 사실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선진국들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행태들이 괘씸하기까지 했다. 아! 난 아직 멀었어. 마음의 수양이 필요해.

이 책 중에 미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내용을 보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링컨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링컨은 노예해방의 아버지이다. 지금까지 난 순진하게 링컨이 정말 노예를 어여삐 여겨 노예 해방 선언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링컨은 노예 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하였지만 그렇다고 노예 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는 흑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보았고, 흑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정황들을 감안할 때 남부는 링컨의 노예 제도에 관한 입장보다는 그의 관세에 관한 입장에 대해 더 많은 염려를 했을 것이다. 실제로 링컨은 연방제의 존립을 위해서라면 남부의 노예 제도를 인정할 의사가 있음을 남북전쟁 기간 동안 명백하게 밝혔었다. 그러니까 1862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그의 도덕적 신념보다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62쪽.

하하! 그렇다고 해서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도 정치가이며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후진국일 때는 선진국이 되고자 별 짓을 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고 나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선진국들이다. 분명 그들 또한 후진국이었을 때가 있었고 어떻게 하면 후진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지는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들이 '따라잡기 기간'에 있는 동안 현 선진국들은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외국의 숙련된 노동 인력을 빼돌렸으며, 선진국들이 수출을 금지한 기계를 밀수입하였고, 산업스파이를 고용하는가 하면, 다른 국가들의 특허권 및 상표를 계획적으로 도용하였다. 그러나 일단 자신들이 선진국의 대열에 오르면 자유 무역을 주장하고, 숙련된 노동 인력 및 기술의 유출을 금지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허권 및 상표를 강력히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한때 도둑질을 일삼던 이들이 하나씩 차례로 파수꾼이 된 것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년 5월, 124쪽.

가볍게 읽고자 읽기 시작한 책이 점차 무겁게 다가왔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실들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빗대어 보니 씁쓸하기만 했다. 세상에 정말 선한 나라는 없는 걸까. 다른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떠벌리지만 결국 그건 자신들을 위한 것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는 나라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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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십부터, 새로운 인생을 위한 길잡이

불혹,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이 책은 저자가 1929년부터 시작된 미국 대공황으로 인해 극심한 경제불황과 사회혼란을 겪은 중년들을 대상으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해온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극심한 변화의 시기를 겪고 혼란에 빠져있던 마흔 이후의 중년들에게 그는 '새로운 삶의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들려주었고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주제이다.

1930년대 미국과 현재의 우리나라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약간의 차이로 인해 이 책의 내용 중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도 있지만 그 정도야 시대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것이니 가볍게 넘어갈 수 있으리라.

그런데 왜 하필 마흔 살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이 될 때까지는 이렇다 할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 그때까지는 세상이 그 사람의 역량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타고난 그릇에 걸맞은 자리를 내어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마흔이 가까워오면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또한 <생각>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훌륭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사람들이 이제 막 힘을 얻고 자신을 파악하기 시작하는 나이인 것이다.

<인생은 사십부터>, 월터 B. 피트킨 지음, 김경숙ㆍ정해영 옮김, 사이, 2007년 3월, 87쪽.

저자는 사람이 자신을 파악하기 시작하는 나이를 마흔이라고 보고 있다. 그게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은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 40대가 되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마흔 이전에는 그저 세상의 흐름 속에서 휩쓸리며 살아가게 되지만 자신을 파악하게 되면서부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마흔 이후에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행운은 오로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영리한 사람들은 오래 사는 법을 배운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 자신도 딱히 즐거울 것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도 않는, 특징도 없는 타성적인 일을 계속하며 살아간다. 자유란 오직 자유로운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권력은 권력 있는 자들의 것이듯, 삶이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인생이 마흔에 시작되는 것은, 뭔가 전념할 것을 찾고 살아갈 방도를 추구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삶은 공허할 뿐이다. 나약한 자들에게 마흔 이후의 삶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자각일 뿐이다. 하지만 생기 넘치고 활기찬 사람에게 마흔 이후의 삶은, <서곡이 끝나고 보다 위대한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인 것이다.

<인생은 사십부터>, 월터 B. 피트킨 지음, 김경숙ㆍ정해영 옮김, 사이, 2007년 3월, 99쪽.

그렇다면 마흔 이후에 인생을 제대로 시작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냥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마흔이 넘어서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인생을 마흔부터 시작하려면 자신의 '소망'이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 사십에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정도도 모른다면 인생을 시작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무엇을 소망하는지 아는 것이 그 소망을 이루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신의 소망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당신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

<인생은 사십부터>, 월터 B. 피트킨 지음, 김경숙ㆍ정해영 옮김, 사이, 2007년 3월, 55쪽.

목표가 없는 삶은 공허한 삶이다. 인생을 살면서 바라는 것이 없다면 다른 여건이 갖춰진다고 하더라도 무의미한 삶이 되지 않을까.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아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소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고 그걸을 이루기 위한 기반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이 '언어와 논리의 숙달'이다.

따라서 제대로 삶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우리는 제대로 <읽고>, 정확한 의미로 <쓰고>, 자신의 뜻을 명료하게 <말하고>, 사려 깊게 <관찰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지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언어와 논리의 숙달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대단히 쉽게 만든다. 예를 들어 명석한 교사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어린 제자들을 가르치는 반면, 입만 열면 허튼 소리를 하는 산만하고 서툰 교사는 단 1센티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지루하게 긴 길을 돌아간다. 이는 다시 말하면,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단 10분 만에 이야기를 끝내지만, 수다쟁이는 씩씩거리며 한 시간을 질질 끈다는 뜻이다. 모든 수준 높은 일들이 다 그렇다. 근본적인 것을 정복한 자들은 평탄한 길을 여행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로, 평균 수준의 사고력과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보다 열 배 이상의 성과를 올린다.

<인생은 사십부터>, 월터 B. 피트킨 지음, 김경숙ㆍ정해영 옮김, 사이, 2007년 3월, 62쪽.

이처럼 '언어와 논리의 숙달'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며 이를 제대로 숙달한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성과는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흔 이전의 경험들이 마흔 이후의 삶을 결정 짓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간절히 원하고 거기에 필요한 준비를 한다면 우리는 마흔 이후에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이제서야 겨우 다 읽었다. 게을러진 탓이 크겠지만 왠지 매끄럽지 못한 번역도 한 몫 한 것 같다. 책의 내용에 비해 번역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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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이야기, 인생을 바꾸는 피드백

소통(Communication)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있던 그 사회 내에서의 소통은 정말 중요하다. 소통이야 말로 그 사회를 유지시키는 기본이 되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 왜 알면서도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걸까. 아마도 그 방법을 모르거나 미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책들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려고 하면 그게 참 어렵다. 뭔가 쑥스럽기도 하고 또 내가 나서서 이렇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소통 없는 사회, 조직은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저기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서로 간에 불신만이 쌓여간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법.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이 책에서는 소통의 가장 기본이 되는 피드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피드백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이나 말에 대해 대응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피드백이라는 것이 쉬운 건 아니다. 정말 어렵더라. 어떻게 하면 이런 피드백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은 피드백이 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아는 가장 큰 오해 가운데 하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거야'다. 정말 가까운 사이에서는 표현하지 않아도 다 이해할 거라는 착각. 하지만 이런 혼자만의 믿음은 기실 무관심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뿐이다. 칭찬으로든, 미소로든, 비판으로든, 손짓으로든, 서로의 생각을 함께하지 않는 인간관계는 머지않아 황폐해지고 만다.

<피드백 이야기>, 리처드 윌리엄스 지음, 이민주 옮김, 토네이도, 2007년 3월, 책 표지.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위에 나온 것처럼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줄 것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표현해야 상대도 내 마음을 알고 이해해줄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피드백의 네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 지지적 피드백 - 소통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바탕
  • 교정적 피드백 - 기존에 형성된 관계를 개선, 발전시켜 나가는 데 유용
  • 학대적 피드백 - 맺고 있는 관계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
  • 무의미한 피드백 - 어떤 면에서는 학대적 피드백보다 더 학대적인 피드백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지지적 피드백'이 가장 이상적인 피드백이다. 지지적 피드백의 가장 확실한 예는 칭찬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 추게 한다지 않는가. 지지적 피드백을 꾸준히 받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물론 항상 지지적 피드백을 할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한 일을 지적하고 이를 고치도록 하는 '교정적 피드백'도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 지지적 피드백을 주고 어떤 경우에 교정적 피드백을 줄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라고 한다. 이건 경험에 의해 배울 수 밖에 없고 꾸준히 노력해야 이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보통 '교정적 피드백'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대부분 '학대적 피드백'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교정하기 위해 우리는 상대를 학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고치도록 노력해야지.

피드백은 모든 사회에서 중요하다. 직장도 사회의 하나이므로 직장 내에서도 피드백은 상당히 중요하다.

모든 직원의 생산성의 기반에는 대인관계의 피드백이 필수조건으로 깔려 있습니다. 그것도 없이 사람들은 직장에서 문제를 증명해 보이려고 하죠.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우리가 무수히 많은 돈과 자원을 쏟는 그런 종류의 문제들 말이에요. 하지만 피드백만 적절히 받으면 사람들은 서점에 있는 책들이 추구하는 그런 일들을 기꺼이 해내려고 합니다.

<피드백 이야기>, 리처드 윌리엄스 지음, 이민주 옮김, 토네이도, 2007년 3월, 30쪽.

회사라는 것은 수익 창출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다. 아무래도 이러한 목적을 갖고 있는 특수한 조직이다 보니 원하는 목적을 얻기 위해 직장 내에서의 의사소통은 항상 중요한 이슈로 취급된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많은 회사에서 의사소통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 문제가 항상 지적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수많은 상사들은 직원들의 불필요한 행동을 줄이거나 없애도록 도와야 한다는 소임을 종종 잊어버립니다. 직원들이 쓸데없는 행동을 멈추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직원들의 피드백 통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지적 피드백이 다른 누군가의 통을 채워서 그 사람의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 사람의 성과는 올라가고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다시 말해 오늘 약간의 시간을 투자하면 내일의 문젯거리가 줄어든다는 거죠. 문제가 줄어든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요? 바로 가장 중요한 손익상태가 좋아진다는 뜻입니다. 결국 효과적인 피드백은 비즈니스 수익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아시겠죠?

<피드백 이야기>, 리처드 윌리엄스 지음, 이민주 옮김, 토네이도, 2007년 3월, 171쪽.

원하는 성과를 내라고 닥달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피드백을 주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거나 혹은 모르고 지낸다. 직장 내에서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상사들에 의해 주도된다. 즉, 직원들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상사가 잘 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성공적인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개개인이 성공해야 한다.

<피드백 이야기>, 리처드 윌리엄스 지음, 이민주 옮김, 토네이도, 2007년 3월, 217쪽.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의 가장 큰 자산은 그 조직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이다. 조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개개인이 성공해야 한다. 반대로 구성원 개개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이 둘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이 당연한 것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직원 개개인의 성공을 보장하는 회사가 결국은 성공하게 된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우리는 봤고 지금도 그런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구직자들이 노력하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언제나 느끼지만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참 어렵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피드백은 아주 중요한 수단이며 피드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에 따른 효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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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별 여행자, 사막의 어린왕자

황량한 사막,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모래 뿐일 것 같은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그들은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사막에 살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을 자유인이라고 부른다. 이 자유인 중 한 소년이 우연한 기회에 <어린 왕자>를 받게 된다. 이 책 한 권은 사막의 소년을 꿈꾸게 만들며, 소년의 꿈은 그를 사막을 벗어나 프랑스 파리까지 가게 만든다.

파리에 온 소년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문명세계의 갖가지 편리한 도구들을 본 소년은 감탄하고, 넘쳐나는 음식들과 물을 본 소년은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점차 문명세계에 익숙해져가는 소년은 사람들 속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씩 찾아가게 된다.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도 바쁜 걸까? 자신의 가족보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한 걸까? 왜 오늘을 위해 살지 않고 내일을 위해 사는 걸까? 왜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갖기를 원하는 걸까?

사막에서 온 소년의 눈에 비친 문명세계의 사람들은 고독하며 욕심 많고 조급하다. 소년은 이런 사람들에게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지혜로운 사막 유목민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보육교사를 하며 아이들에게 사막 유목민들의 지혜를 들려주고 라디오 방송에 나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신문기사를 쓰고 그리고 이 책을 썼다. 풍요롭지만 결코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무사'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온 유목민이다. 그가 살던 사막에는 테제베는 물론 지하철도, 엘리베이터도, 자동문도 없다. 그곳에서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며 살아가는 유목민들은 지도나 표지판이 아니라, 별과 은하수를 보고 방향을 잡는다. 문명세계의 사람들은 자신의 하루를 일정표에 맞춰 계획하고 시간을 분과 초로 나누어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사막 사람들에게는 오직 아침과 점심, 저녁이 있을 뿐이다. 문명인들은 십대 시절부터 노후를 걱정하지만, 유목민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명종 소리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지 않고 밝아오는 태양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상에 어둠이 내리면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잠자리에 든다. 그들은 미래에 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시간을 재지 않으며, 돈이나 물건의 양을 재지 않는다. 양 한 마리는 그대로 양 한 마리일 뿐, 몇 킬로그램의 고깃덩이나 얼마짜리 물건으로 바뀔 수 없다.

<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지음, 신성영 옮김, 문학의숲, 2007년 8월, 238쪽.

사막 유목민들은 사막에서 자기 자신을 만난다고 한다. 고통이 가득 찬 공간일 것 같은 그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걸까.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진(眞)이며, 진이기 때문에 깊고 아름답다. 사막에서 진정한 자아와 만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막은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만난 자는 내면의 평화를 이룬다. 그리고 그 내면의 평화는 침묵 속에 존재한다. 삶의 소란들 속에서 물러나 어떠한 자기 내면의 울림과, 하늘로 곧바로 상승하는 정신성과 하나로 일치될 수 있기 때문에 사막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지음, 신성영 옮김, 문학의숲, 2007년 8월, 209쪽.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법,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눈을 갖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너무 풍요롭기 때문일까. 너무 가진 것이 많아서 더 욕심이 많아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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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쇼크, 아이를 키우는 방법!

참 많은 걸 담고 있는 책이다. 지난 10여년 간 60여개국 7000여명의 과학자들이 양육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으니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양육"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당 부분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칭찬의 역효과에서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의 수면, 거짓말, 영재교육, 형제간의 우애, 청소년기의 반항, 청소년의 자제심, 공격적인 아이들, 아이의 언어발달, 인종문제 등 양육에 대해 폭 넓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부모치고 자식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키워야 우리 자식들이 잘 살 수 있을까! 아마 부모라면 죽을 때까지 이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잘 키웠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판단기준과 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뭐가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몇가지 기본적인 생각들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으리라고 본다.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한 아이, 형제 그리고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는 아이, 이런 생각들은 아마 대부분의 부모가 갖는 바램일 것이다.

부모들의 바램은 많지만 자식들은 언제나 부모가 바라는데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들은 화를 내보기도 하고 깨우치기도 하며 하나씩 배워나간다. 요즘은 육아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준다. 워낙 많은 책들이 나와서 종종 이 책에서 봤던 내용을 저 책에서 보기도 하고 어떤 책은 여러 책에 나온 내용을 짜집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에 나와있는 내용들도 전혀 생소한 것들은 아니다. 집사람에 따르면 다른 책에서도 나온 내용들이 많아 그리 신선한 내용은 아니라고 한다. 나야 육아나 양육에 대한 책을 그리 많이 읽어보진 않아 이 책에 나온 내용 중 많은 부분들이 새로운 것이었지만 이런 책들을 많이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중복된 내용들이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칭찬하는 방법, 칭찬하는 대상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칭찬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아이에게 칭찬을 하는 것이 좋은 양육방법이라고 알려지며 남용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과하면 탈이 나는 것을! 특히 아이의 노력보다는 아이가 똑똑하다는 것을 칭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노력을 강조하면 아이들에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변수를 주는 셈입니다. 아이들은 자기 자신이 성공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게 되지요. 그러나 타고난 지능을 강조하면 오히려 통제력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실패에 대처할 수 있는 훌륭한 대책을 주지 못하는 거지요."

이어진 면담을 통해 드웩은 타고난 지능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믿는 아이들은 노력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아이들의 논리는 이랬다. '나는 똑똑하다. 고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라는 생각 때문에 노력 자체가 폄하되고 있었다.

<양육쇼크>, 포 브론슨ㆍ애쉴리 메리먼 지음, 이주혜 옮김, 물푸레, 2009년 11월, 31쪽.

아이가 똑똑하다는 것을 칭찬하는 것은 아이의 발전을 방해하는 행동이다. 사람의 두뇌도 근육처럼 쓰면 쓸수록 더 똑똑해진다. 아이들에게 이런 점을 강조하고 더 노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의 부모의 몫이 아닐까 싶다.

잠자기의 중요성


요즘은 어른들도 그렇지만 특히 아이들의 잠이 많이 부족하다. 중학생만 되더라도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 된 것 같다. 사람에게 있어 잠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줄일 수 있는 시간이 잠 자는 시간이다보니 잠 자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한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잠 자는 시간을 줄여 공부한다. 과연 잠 자는 시간을 줄여 공부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이의 수면은 성인의 수면과 질적으로 다르다. 아이는 수면시간의 40퍼센트 이상을 서파수면 단계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는 성인 서파수면 시간의 열 배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래서 밤 동안 숙면을 취해야 어휘와 시간표, 역사연표 등 세세한 사실들을 제대로 익히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는 기억에 얽힌 감정적인 배경은 기억이 어디에서 처리되느냐와 관계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부정적인 자극은 편도에서 처리되고 긍정적이거나 중성적인 기억은 해마가 처리한다. 그런데 수면이 부족하면 편도보다 해마에 더 큰 타격을 안겨준다. 그 결과 수면이 부족한 사람은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우울한 기억만 자꾸 생각하게 된다.

<양육쇼크>, 포 브론슨ㆍ애쉴리 메리먼 지음, 이주혜 옮김, 물푸레, 2009년 11월, 61쪽.

성장기의 아이들은 잠 자는 것이 먹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아이들의 지적 능력은 떨어지고 비만이 생길 가능성은 많아지며 성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제발 우리 아이들에게 충분히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을 주자.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는 중학생 조카를 보면 불쌍하기 그지 없다. 뛰어놀아도 모자랄 나이에 하루 종일 책상에 붙어있어야 하다니!

아이들의 거짓말


난 우리 아이들에게 "정직"할 것은 강조한다. 다른 잘못들은 그냥 넘어가더라도 거짓말하는 것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질 않는 편이다. 모든 사회적인 문제가 "거짓"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항상 이런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라고 듣고 자란 아이들도 종종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을 하면 혼이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아이들. 왜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는 걸까? 그리고 아이들은 언제부터 거짓말을 배우게 되는 걸까?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학자들은 어린아이들이 실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거짓말을 배운다는 것을 밝혀냈다. 탤워 박사의 엿보기 게임에서 만 3세 아동의 3분의 1만이 엿보기를 했고 엿보았는지를 물으면 대부분이 인정했다. 그러나 만 4세 아동들은 80퍼센트 이상이 엿보았는데, 그중 80퍼센트 이상은 거짓말을 했다. 만 4세가 되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거짓말을 시작한다. 나이가 많은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은 조금 더 일찍 거짓말을 배우는 경향을 보였다.

부모들은 종종 어린 나이의 거짓말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흔히 이때의 거짓말은 순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 거짓말이 옳지 못한 것인지 모르는 것이고 혹은 거짓말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도 잘 모른다고 여긴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 분별력이 생기면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멈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탤워 박사는 이러한 어른들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은 진실과 거짓말에 대한 분별력이 생길수록 더욱 더 거짓말을 잘 하게 된다. … 이런 과학적 연구결과를 전혀 무시하고 무수한 육아사이트와 자녀교육서에는 부모들을 향해 자녀가 거짓말을 해도 그냥 놔두는 게 좋으며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는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아이들은 자랄수록 거짓말을 더 잘하게 된다.

<양육쇼크>, 포 브론슨ㆍ애쉴리 메리먼 지음, 이주혜 옮김, 물푸레, 2009년 11월, 89쪽.

생각보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거짓말을 배우는 것 같다. 만 4세, 우리 나이로 다섯살, 여섯살 정도 되면 아이들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할 줄 알게 된다. 조금 더 크면 아주 유창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지적 능력이 좋은 아이들이 더 거짓말을 잘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에 따르면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규칙위반을 했을 때라고 한다. 모든 가정에는 규칙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규칙을 어겼을 때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규칙위반을 은폐하기 위해서다. 가장 먼저 아이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괴로워 머뭇대다가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식의 부정은 충분히 예측할 수도 있고 몹시 보편적이라 흔히 부모들이 잘 포착해낸다. 이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부모들이 자녀의 거짓말을 포착해냈을 경우, 이를 거짓말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는 경우가 1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모들은 애초의 규칙위반 사실만 나무랄 뿐 실패한 은폐작전에 대해서는 꾸짖지 않는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거짓말을 시도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적을 받지 않는 셈이다.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법을 배우면서 동시에 아이들은 거짓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처음에는 거짓말이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점점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떤 종류든 모든 속임수는 나쁘다고 생각하다가 점점 어떤 종류의 속임수는 괜찮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양육쇼크>, 포 브론슨ㆍ애쉴리 메리먼 지음, 이주혜 옮김, 물푸레, 2009년 11월, 90쪽.

아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 보다는 부모의 행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부모가 원하는 아이로 보이기를 원해서,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거짓말을 했음을 알았을 때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도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부모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여섯 살 아이에게 "네가 엿보았다고 해도 화내지 않을게. 사실을 말하면 스스로 정말 행복할 거란다"라는 말은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하면 거짓말을 아주 약간은 줄일 수 있지만 여섯 살 아이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이 아니다. 아이는 부모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정말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말은 "네가 엿보았다고 해도 화내지 않을게. 사실을 말하면 엄마는 정말 기쁠 거야"이다. 이는 사면의 약속과 좋은 방법을 동시에 알려주는 말이다. 탤워 박사는 최근 발견한 연구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부모를 기쁘게 해주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면 부모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말해주는 것은 아이들이 원래 품고 있었던 생각, 즉 진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좋은 소식을 말하는 것이 부모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생각에 도전장을 던져주는 것이다.

<양육쇼크>, 포 브론슨ㆍ애쉴리 메리먼 지음, 이주혜 옮김, 물푸레, 2009년 11월, 99쪽.

그리고 가정의 규칙을 정할 때는 유연하게 정하는 것이 좋다. 규칙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강압에 의한 규칙은 아이의 거짓말을 유도하는 것이다. 규칙을 정하면서부터 아이의 의견을 반영하고 특별한 예외상황일 때는 아이가 이를 솔직히 말하고 규칙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귀가시간이 10시인데 어떤 날에는 아이들 사이에 특별한 일이 있어 늦게 들어와야할 경우가 있다. 이때 아이가 자연스럽게 사실을 말하고 귀가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다른 핑계를 대고 즉 거짓말을 하고 늦게 들어오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강압적으로 무조건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게 좋을까.

아이를 키우는 방법


위에서 말한 내용들 외에도 이 책에서는 여러가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집중력을 키워주기 위한 방법, 어린이 대상 TV 프로그램의 폭력성, 부부 싸움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아이들과의 상호반응의 중요성 등 부모라면 한번쯤은 고민해볼만한 이야기들이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참 어렵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마도 어떻게 하든 분명 나중에 아쉬움을 남을 것 같다. 우리 부모님들께서 그랬던 것처럼 강압적으로 자식들을 키워도 아쉬움이 남을테고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도록 유연하게 키워도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무엇이든 적당한 것이 좋은 것이다. 차고 넘치지 않게 아이의 역량과 상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어려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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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장군의 고뇌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이기에 더 애절하다. 위인전을 통해 숱하게 장군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지만 소설로 인간 이순신을 접하는 것은 처음이다.

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참 좋아한다. 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역사 속에서는 읽을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뒷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 또한 역사소설이다. <난중일기>, <이충무공전서>, <선조실록>, <연려실기술> 등의 기록을 기반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고뇌를 책에 담았다.

이 책은 일인칭시점으로 되어 있다. 주인공 본인의 시점에서 그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덕에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가 이순신이 되었고 이순신이 내가 되었다. 책에 적혀있는 갖가지 감정들에 대한 묘사들이 내가 느끼는 것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것들이 전혀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정말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면들처럼 이 모든 것들이 몸으로 느껴졌다.

책의 시작은 정유년 4월 이순신 장군이 의금부에서 풀려나 백의종군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많이들 알고 있는 내용이다. 명량해전의 대승에서부터 노량해전에서의 죽음까지. 인간 이순신, 그도 결국은 한 인간이었다. 구국의 영웅이자 세계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그도 결국은 한 인간이었다. 그를 둘러싼 상황들 속에서 인간 이순신이 느꼈을 고뇌는 생각보다 컸을 것이다. 어머님의 죽음, 아들의 죽음, 조정의 어이 없는 명령, 부하의 배신과 충성, 죽음. 이런 사건들 속에서 인간 이순신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대체 왜 그는 그리 고뇌하였던가. 한 나라의 장수이기에 한 임금의 신하이기에 수많은 장졸들의 우두머리이기에. 이들 사이에서 이순신 장군은 고뇌했다. 칼은 노래하지 않았다. 칼은 울었다.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는 대장장이 태구련이 만들어준 이순신 장군의 칼에는 다음과 같은 검명(劍名)이 새겨져 있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일휘소탕 혈염산하 (一揮掃蕩 血染山河)

이 대목은 소설에도 나와있는데 책에서는 물들일 염(染)자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 검명에서 색칠할 도(塗) 대신 염(染)을 써서 이순신 장군이 바라는 바, 즉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부각시켰다.

소설 속의 이순신은 바다에서 죽기를 원했다. 모든 적을 죽이고 자신 또한 죽기를 원했다. 임금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바다에서 전사하는 것을 원했다. 아마 전쟁이 끝나고 나면 임금이 그의 목숨을 가져갈 것을 예측했던 것이리라. 아마도 이 생각은 당시의 이순신 장군이 정말 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의 정치상황 속에서 전쟁 후에 이순신이 편안한 삶을 이어가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칼의 노래>, 김훈 지음, 생각의나무, 2001년 5월, 388쪽.

그는 편안히 눈을 감았을까? 아, 그러고보니 오는 28일이 충무공탄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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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신을 버린 사람들!

거침 없이 읽어내려갔다. '신도 버린 사람들'이 왜 신을 버리게 되었는지 그 여정은 참 멀고도 험했다. 사람이 사람을 천대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회신분제도,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이런 사회신분제도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라졌지만 인도에서는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뿌리 깊은 인도의 사회신분제도, 즉 카스트 제도 속에서 굳건히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고 천대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었던 사회제도였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문명화가 이루어지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빠른 속도로 없어졌다. 교육이 이러한 신분제도가 사라지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문명화가 덜 된 사회일수록 이런 신분제도가 유지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생활의 근간이 되었던 신분제도는 인간의 본성마저 참담하게 짓밟았다.

이 책의 지은이 나렌드라 자다브는 인도의 경제학자이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인도중앙은행 수석경제보좌관을 지냈으며 국제통화기금 등 세계기구에서 활동하였다. 이 책이 출간될 즈음에는 인도의 유명 대학 중 하나인 푸네 대학의 총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세계 언론에서는 그를 향후 인도를 이끌어갈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인도에서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달리트 출신이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 보면 네 가지 등급의 신분이 있다. 가장 상층의 브라만과 그 아래에 있는 크샤트리아와 바이샤, 그리고 노예계급인 수드라가 있다. 나렌드라 자다브의 조상들이 속한 달리트는 이 네 개의 계층에도 속하지 못하는, 즉 노예계급인 수드라보다도 낮은 계층이다.

기원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힌두경전 <리그베다>는 인간의 계급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언급하였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 푸루샤가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창조했는데, 푸루샤의 입은 사제인 브라만이 되었고 팔은 군인계층 크샤트리아가 되었다. 허벅지에서는 상인계급 바이샤가, 두 발에서는 노예인 수드라 계층이 탄생하였다.  이 네 계급은 색깔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르나 제도, 곧 사성제라고 불린다. 그리고 사성제에 들지 못하여 '아웃 카스트'라고 불리는 불가촉천민이 있었다.  그들은 수드라보다 더 낮은 최하층민이었다.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김영사, 2007년 6월, 9쪽.

이런 인도의 사회신분제도는 인도인의 상당수가 믿고 있는 힌두교의 경전에 나와있기 때문에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지난 3500년 동안 이를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보다도 더 업신여김을 받았던 달리트 사람들. 어떻게 그들 중에서 인도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인정 받는 사람이 나올 수 있었을까.

1950년 인도 헌법에서는 이런 사회신분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했던 제도가 하루 아침에 없어질 수 있겠는가. 인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런 신분제도가 존재했고 생활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만났던 인도 사람들 중에는 브라만 계층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행동거지와 말투에서는 이런 사회계급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달리트의 사회적 독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인도 헌법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였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교육하고, 단합하고, 궐기하라"라고 외치며 달리트 운동을 이끌었고 달리트의 정치세력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달리트를 무시하고 외면했던 간디와 숱한 충돌이 있었다. 보통 간디라고 하면 인도의 무폭력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존경 받고 있지만 달리트들에게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달리트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뿌리 깊은 힌두교의 전통을 꺽지 못하고 결국 불교로 개종하게 된다. 신도 버린 달리트는 결국 자신들의 신을 버린 것이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수백만 달리트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 중에는 이 책의 지은이 나렌드라 자다브의 아버지 다모다르 룬자지 자다브도 있었다. 이 책은 다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다모다르 룬자지 자다브와 그의 아내인 소누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살아왔던 20세기 초반의 인도는 다른 많은 아시아의 나라들처럼 큰 사회적 변혁이 있었고 그 소용돌이 속에는 힘겹게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온 다무와 소누가 있었다.

달리트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에 맞서며 살아온 다무와 소누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전통과 종교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들의 신세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암베드카르 박사가 주장했던 것처럼 끊임없이 자식들의 교육에 온 힘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 부족할 것이다. 어찌 그들의 고통과 번민을 책을 읽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막연히 알고 있었던 인도의 사회신분제도 카스트, 그리고 이를 깨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 않은 계급제도가 있었고 달리트처럼 천대 받으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지라도 그들의 삶의 조그만 부분이라도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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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개청춘, 아직은 젊은 20대가 바라본 세상!

일단 모든 걸 다 제쳐두고 이 책은 재미있다! 글쓴이의 블로그 글들을 모아 정리하고 편집해서 이 책을 펴낸 것으로 보인다. 한때 기자를 꿈꿔왔던 글쓴이의 글솜씨와 재치가 배인 글들을 묶어놔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글쓴이의 블로그도 재미있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책의 구성도 짧은 글들을 묶어놓아서 언제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글쓴이의 생각이 깊고 많은 생각을 하는 것에 놀라게 된다. 나는 헛살았던 것일까. 왜 이렇게 기막히고 재미있고 기발한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내심 글쓴이의 이런 능력에 부러워하며 책을 읽다가 아! 난 공돌이야! 하며 한탄한다.

많은 사람들이 블로깅을 하고 블로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렇게 재야에 숨은 고수들이 하나 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의 글을 읽는다는 건 재미없는 세상에서 읽을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아주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블로그와 책은 분명 다른 매체인데 블로그 글들을 책으로 엮어낸다는 것도 재미있어 보인다. 하나의 책으로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블로그 글들을 묶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책과 블로그는 그 분량 자체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책 내용을 하나의 주제로만 채우기 위해서는 블로그 글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 책에 담긴 글들도 모두 20대의 세상에 대한 울부짖음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런 내용들로 시작했지만 뒤로 가면서 글쓴이 개인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글들도 함께 담고 있다.

블로그가 인기를 끌면서 이 책처럼 새로운 형태의 책이 나오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여러 다른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블로그의 인기를 등에 업고 책을 팔아보고자 하는 상업적인 생각에 대한 반대와 책이란 모름지기 책다워야 한다는 생각, 그래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들을 하나로 묶어놓은 것을 좋게 보는 시각 등 많은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책이라는 것이 어떤 정해진 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블로그 글을 묶어놓은 것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재미까지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다만 아쉬운 것은 상업적인 접근방법에 대한 것이다. 뭐 세상살이가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이 세상에서 돈을 떠나 순수함만을 따지기는 어렵겠지만 결국 이 책도 이런 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건 좀 씁쓸하다.

재미와 별개로 책에 담긴 글쓴이의 생각들을 보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한창 생각 많이 하고 사회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가야할 20대 초반에는 대학이라는 틀에 갇혀서 취업을 위해 몸부림을 친다. 일명 스펙을 높이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고 자신의 꿈이나 희망이라기보다는 단지 취업을 위해 해외연수나 다른 활동들을 한다. 이렇게 하고서도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느냐. 물론 그것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버리고 오로지 취업, 그 하나만을 보고 달려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대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오늘날 이십대들이 대의에 시들해진 건 선악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일 거다. 적이 모호해진 시대에 분노를 배우는 건 어렵다. 물론 나도 행복하지 않고, 그럴 때마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범인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능하여 이 회사에 들오온 나 자신? 아니면 경쟁하지 않으면 도태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전두환에게는 짱돌을 던지면 되지만, 신자유주의랑은 어떻게 싸워야 되지?

못 싸우지. 386선배들의 말투를 빌리면 "노동자 착취구조는 견고해졌지만 범인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면 그를 좀 과대평가하는 거다.) 어떡하지? 우리도 행복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내 영어 점수라도 높여놓는 수밖에. 이렇게 부단히 자신을 학대하는 것 말고는 떠오르는 묘수가 없다.

그래서 우린 욕먹는다. 정치의식 희박하고 이기적이라고. 열정은 없고 약았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꼭 그렇게 떼로 모여서 이를 악물고 투쟁해야 저항인가. 이십대까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게 만든 고아우병 쇠고기 파동에서 나는 새롭게 작동하는 정치 구조를 본다.

<위풍당당 개청춘>, 유재인 지음, 이순, 2010년 2월, 168쪽.

20대가 이기적이고 정치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많이 하는데 이건 그들의 탓이 아니다. 이 사회가 우리들이 그들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그들이 그러길 원한 것도 아닌데 그들을 탓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그런 걸 바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강요하는 건 잘못이다. 그럼에도 가끔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다소 철없어 보이는 생각을 들으면 아쉽기는 하다.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그들도 나중에 더 나이를 먹고 되돌아보면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간부 체질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간부란 내가 모시는 상사고, 내 회사생활의 행복지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조직에 잘 적응했다고 선택된 이들이다. 그들의 특징은 곧 조직이 원하는 가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은 K팀장님 같은 사람은 도태시키고 이상한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도록 만든다. … 그런 사람들이 승진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십 년 후쯤 조직은 사나운 사람으로만 구성되어 있을 것이며, 십만 년 후쯤엔 인류 전체가 아주 독한 종으로 진화해 있을지도 모른다. 좀 오번가. 내 보기엔 오버가 아닌 거 같다. 실제로 승진의 원리는 진화의 원리와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위풍당당 개청춘>, 유재인 지음, 이순, 2010년 2월, 80쪽.

나름 심각한 내용인데 위 내용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실제로 회사의 간부들 중에는 일을 잘 하는 사람보다는 아첨 잘 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는 않은데 이걸 인간의 진화에까지 붙인다는 건 너무 과장되었다고 본다. 실제 역사에서 간신들은 승승장구했다. 충신들은 충언을 서슴치 않아 온갖 고초를 당하지만 간신들은 듣기 좋은 말만 하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온전히 지키고 자손만대 떵떵거리고 살아갈 밑천을 마련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들이 그렇게 진화했나? 진화라는 말을 꺼내기에는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인간들에게 권력과 계급이라는 것이 생기고 난 이후에 이런 간신들은 항상 득세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공평하다. 이런 간사한 사람들도 있지만 충직한 사람들도 많다.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제5도살장>, 75쪽.

<위풍당당 개청춘>, 유재인 지음, 이순, 2010년 2월, 213쪽.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심, 이것들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이다. 이 내용을 읽고 이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이 답답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지혜야.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필요한 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이다. 나 혼자 잘 나봐야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편안하게 잘 읽었다. 재미도 있었고 이런 저런 생각들도 많이 했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책도 세상에 있어야 한다. 다만 책의 홍보전략인지 모르겠지만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라는 타이틀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좋은 문구들도 있었을텐데 꼭 이렇게 자극적인 타이틀을 붙였어야 했을까? 차라리 이 책의 제목인 "위풍당당 개청춘"이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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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하는가, 일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

우리 모두는 일을 한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차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직장을 갖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주위에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된다. 왜 우리는 일을 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 딱 머리에 떠오르는 말은 "먹고 살기 위해서"이다.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하! 너무 당연한 건가?

세상에는 대단한 분들이 참 많다. 보통사람들이 "왜 일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뻔한 대답만을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일본의 살아있는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도 대단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도 "왜 일하는가"하는 질문에 보통사람과는 다른 말을 해주고 있다.

아마도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경영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쇼이치로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경영인으로 꼽힌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가 말하는 "왜 일하는가"는 색다르다.

나는 내면을 키우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 내면을 키우는 것은 오랜 시간 엄격한 수행에 전념해도 이루기 힘들지만, 일에는 그것을 간으하게 하는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 매일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내면을 단련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놀라운 작용을 한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신정길 옮김, 서돌, 2010년 3월, 15쪽.

내면을 수련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것은 면벽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백일기도를 드리고 참선을 하고 신을 위해 기도를 드려야만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경우에는 일을 통해 내면을 수련하고 인격을 수련한다고 한다. 허허!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부제목을 보면 "이나모리 가즈오가 성공을 꿈꾸는 당신에게 묻는다"라고 되어 있다. 성공, 난 요즘 들어 이 성공이라는 단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공을 강요하는 듯한 그리고 성공이라는 단어의 뜻을 강요하는 듯한 이런 말들이 영 내키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돈 많이 벌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닐진데 꼭 이런 책들을 보면 이걸 강요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말하는 "성공"은 약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다. 바른 길을 걷고 꾸준히 노력해서 자신의 내면을 키우고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회적인 명성을 얻을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겠지만 궁극적인 "성공"은 이런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얻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런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꾸준함이다. 굽히지 않고 내가 갈 길을 느리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 바로 이것이 성공을 향한 지름길이고 성공으로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다.

일생은 모든 순간순간이 쌓여야만 이루어진다. 지금 이 순간의 1초, 1초가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1주일, 1개월, 1년 그리고 일생이 된다. 제아무리 위대한 업적도 사소한 것들을 착실하게 쌓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놀랄만한 큰 성과, 특별한 천재가 이루었으리라 짐작하는 위대한 업적도 알고 보면 평범한 사람이 한 발 한 발 내디딘 결과일 뿐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한순간에 전구와 축음기를 만들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수만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룬 성과다. 하지만 사람들은 에디슨의 성공만 부러워할 뿐이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수없이 많은 모의실험과 훈련, 헤아릴 수 없는 데이터가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고, 아무리 먼 길도 한 발 한 발 내디뎌야만 그곳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신정길 옮김, 서돌, 2010년 3월, 113쪽.

일을 해야 하는 이유


왜 우리는 일을 해야할까? 그냥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살면 좋지 않을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보통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경우는 "내면을 단련하고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아무런 목표도 없이 일도 하지 않고 나태하게 생활하다 보면 인격적으로 타락할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마저 썩혀버리고 만다. 이는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인생을 살아가는 참된 의미조차 찾지 못한다. 일하는 수고로움을 아는 사람만이 잠시 동안의 안락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보다 즐겁고 귀중하게 보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신정길 옮김, 서돌, 2010년 3월, 28쪽.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일하지 않고 그냥 노닐며 사는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일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야 한다는 의미이고 자신이 독립적으로 생활을 영유할 수 없다면 분명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길 소지는 많아진다. 특히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고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닌 함께 사는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이건 많은 문제점을 가져온다. 즉 이왕 사는 것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자신의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은 가져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사람마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고 하고 싶은 일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여기에서 가장 기본적인 불만을 갖게 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비하하고 불만스러워한다는 점이다. 주어진 일에 불평불만을 갖고 원망만 한다면, 그 일을 마주하는 것 자체에 짜증이 날 뿐 아니라 그 일을 해야 하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여겨진다. 그럴수록 자신을 더 무능력한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왜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시험해보지도 않은 채 달아나려고만 하는가?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신정길 옮김, 서돌, 2010년 3월, 57쪽.

인생과 일에 있어서 중요한 것


사람마다 가진 능력은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능력도 다르고 자라난 환경에 따라 가질 수 있는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보통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뒤쳐진 출발선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고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인생과 일에 있어서 물론 능력은 중요하다. 능력이 뛰어나면 훨씬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으며 일도 더 잘 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타고난 능력이 전부는 아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다음과 같은 공식을 말하고 있다.

인생과 일 = 능력 x 열정 x 사고방식

이 공식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인생과 일은 능력과 열정, 그리고 사고방식의 곱으로 계산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생과 일이라는 것이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인생과 일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에는 참 좋은 공식이다. 예를 들어 능력이 100인 사람이 20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할 때 그 사람은 2000 정도의 일을 하게 된다. 반면에 능력이 50인 사람이 80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면 그 사람이 하게 되는 일은 4000 정도가 된다. 즉 아무리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열정으로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으며 인생과 일에 있어서 열정은 능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이다.

만일 지금 성실하게 일하는 것밖에 내세울 것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면 그 우직함이야말로 가장 감사해야 할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속의 힘, 지루한 일이라도 열심히 계속해나가는 힘이야말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고, 인생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드는 진정한 능력이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신정길 옮김, 서돌, 2010년 3월, 119쪽.

아울러 저 공식의 마지막 변수인 사고방식 또한 중요하다. 낙관적인 사고방식과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일의 성과는 분명 차이가 생긴다. 이왕 하는 일 즐겁게 그리고 능동적으로 일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항상 비판하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즐기며 같은 정도의 능력과 열정을 가졌다고 봤을 때 즐기며 일하는 사람보다 뛰어날 수 없다.

어떤 새로운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도 낙관적인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전체 분위기가 좋아지고 이로 인해 효율은 좋아질 것이다. 물론 계획과 일정을 세울 때는 비관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현 상황에 대해 비판하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이 계획 단계에서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관적으로 구상하고, 비관적으로 계획하고, 다시 낙관적으로 실행한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신정길 옮김, 서돌, 2010년 3월, 195쪽.

우리가 가져야할 사고방식


누구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싶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기서 성공이란 물질적인 성공이 아니라 정신적인 성공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할까? 이 물음에 대해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고 다짐하라.
  • 모두와 함께 일하고 기쁨을 나누어라.
  •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
  • 다른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어라.
  •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라.
  • 정직하고, 겸손하며, 노력을 아끼지 마라.
  • 남의 것을 탐하지 말고, 욕심을 멀리하라.
  •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고 믿어라.

이렇게 보면 이 이야기들은 전혀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들이지만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이 말들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결국 그 말은 이런 것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 아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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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그윽한 수채화 같은 산골 이야기!

각박한 이 세상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아직 이런 곳이 있으며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런 삶을 느낄 수 있음이 정말 고맙다.

나 또한 넉넉하고 여유로운 전원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도시 생활이 힘들고 각박하게 느껴질 때면 살며시 고개를 드는 이 생각을 아직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난 용기가 없어 아직 이 회색빛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과감히 도시를 벗어나 강원도 산골 마을에 정착을 하고 살아가는 이하영님의 글을 읽으니 참 대단하다 싶다. 그것도 세쌍둥이를 데리고 연고도 없는 그곳에 들어가 살 생각을 하다니!

숲에서의 삶은 과연 어떨까? 책에서 읽은 것마냥 그저 낭만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도시에서의 척박한 삶에 비하면 훨씬 나을 것 같다. 김하영님의 책의 읽으며 숲에서의 삶을 동경해보지만 아마 나 같이 게으른 사람은 그 속에서의 삶이 순탄치 않을 성 싶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변화가 눈에 보이는 곳에서 아이들과 자연과 더불어 넉넉하게 산다는 것, 어쩌면 평생 이루지 못할 꿈일지도 모르겠다.

한 폭의 그윽하고 잔잔한 수채화를 본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간드러지게 쓸 수 있을까. 똑같은 말이라도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떤 표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말을 느낌은 달라질 것이 분명한데 김하영님의 글은 나 같이 정서가 메마른 사람은 쓸 수 없는 그런 글일 듯 싶다.

… 그리고 마침내 곰배령 야생의 화원, '꽃자리'에 오른다. 물소리를 뒤로 하고 하늘이 닿은 능선에 올라서면 탄성이 절로 난다. 그야말로 천상천하 '풀꽃'독존 야생화의 향연. 이미 꽃은 지천이다. 부엽토 사이 애기앉은부채가 수줍은 호기심으로 고개를 내밀고, 산야신의 옷자락을 연상시키는 주홍의 동자꽃이 해말간 미소를 짓는다. 동자꽃은 다섯 개의 하트 모양 꽃잎으로 이루어진 사랑스런 오심화이다. 분홍의 작은 꽃 둥근이질풀은 끝없이 군락을 이루고 나리꽃송이는 우아한 자태를 마음껏 뽐낸다. 곰배령 꽃자리에는 구릿대와 어수리 들이 흰 구름처럼 떠있다. 날아갈 듯한 승마와 바람꽃 무리에 마음 씨앗은 비상의 춤사위를 짓는다. 영아자와 꼬리풀 들은 제 빛깔의 꽃대를 신비롭게 드리우고, 노랑의 뱀무와 양지꽃도 다시 피어나기를 잊지 않았다. 참취들이 옹기종기 사랑스런 꽃망울을 달았다. 여린 노랑의 좁쌀풀꽃도 꽃술에 붉은 구슬을 물고 나를 향해 웃는다. 나직하니 꿀풀은 짙은 보랏빛 숨을 토해낸다. 이 높은 곳까지 어찌 오르셨는지 아랫녘에서 보던 질경이, 토끼풀, 넓은잎외잎쑥 들의 존재는 이채롭기까지 하다. 깊은 눈 속에서 긴 겨울을 난 식물이 피워낸 꽃에는 태양이 내어진 빛의 정수가 아낌없이 들어차있다. 흐르는 꽃, 흐르는 바람이 어울린 오묘한 조화장이다. … 직녀가 직조한 위대한 꽃 양탄자 위로 경우의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듯도 하거니와 하늘의 갸륵한 별무리 은하수마저도 밤이면 이슬로 내려앉아 꽃들에게 입맞추는 천상의 화원, 그곳 곰배령을 '풀꽃세상'이라 부른다.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이하영 지음, 효형출판, 2010년 2월, 162쪽.

위 글을 보면 온갖 풀꽃들의 이름들이 나온다. 저 이름들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랍고 꽃을 보고 그 이름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숲에 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일까? 그건 당연히 아닐터이니 김하영님이 숲에서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풀꽃들의 모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교 국어책에서 봤던 어느 수필 이후로 이렇게 감칠맛 나는 문장들을 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만큼 내가 딱딱한 삶을 살고 있고 딱딱한 글만 보고 있다는 말이 될테고 누군가의 말씀처럼 이제는 부드러운 글도 많이 보려 노력해야겠다.

책에서도 여러 차례 나오지만 숲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역시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다. 특히 도시 생활에 젖어있던 몸을 이끌고 숲에 들어가 산다는 것은 이런 싸움의 연속이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몸이 고단하고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껴지면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테고 그럴 때마다 힘겨운 싸움을 하지 않을까. 이런 싸움에서 굳굳히 버티며 아직도 곰배령 숲을 지키고 있는 이하영님은 대단한 여장부이다!

아마도 숲에서 살다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가지게 될테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많은 생각을 하게 되겠지. 생각이 바르고 긍정적이라면 이런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과 숱한 싸움을 해대느라 힘들 것 같다. 책을 보면 이하영님은 그래도 좋게 생각을 하는 편이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그 삶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닌 듯 싶다. 어찌 사람이 살면서 항상 좋기만 하겠는가.

고즈넉한 가을 숲을 혼자 오르는 건 무척 오랜만이다. 나무들 사이로 풀 사이로 걸었다. 굽이치고 오르고 내리고 휘돌며. 하나도 생김이 같지 않은 돌맹이들을 밟으며. 어느만큼 오르자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이 아랫배에서 꿈틀거렸다. 숲의 정령이 느껴졌다. 나는 하나의 숲, 하나의 식물과 다르지 않았다. 제 생긴 모양대로 아름다운 식물처럼 제 생긴 모양대로 아름다운 나, 오솔길을 걸으며 '사느라 무척 바빴던 나'를 만나 흔쾌히 악수를 청했다. 개울을 건너며 '사느라 주야로 동동거리던 나'를 만나 꼭 안아주었다. 바위에 앉아 잠시 쉬어가며 '사느라 정신없었던 나'를 만나 가만히 등 두드려주었다. 사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나의 고단함 위로해줄 자는 바로 나, 나를 사랑해줄 자도 바로 나, 나를 인정해줄 자도 바로 나. 마음에 강 같은 평화가 물결쳤다.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이하영 지음, 효형출판, 2010년 2월, 223쪽.

치열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도시에 살건 숲에 살건 바다에 살건 어디서나 사는 것은 치열하고 힘들다. 하지만 그 속에서 순응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도 아름답게 살고 싶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던 그곳에서 사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준 김하영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꼭 언젠가는 곰배령처럼 넉넉한 곳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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