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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5 신도 버린 사람들, 신을 버린 사람들! (4)

신도 버린 사람들, 신을 버린 사람들!

거침 없이 읽어내려갔다. '신도 버린 사람들'이 왜 신을 버리게 되었는지 그 여정은 참 멀고도 험했다. 사람이 사람을 천대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회신분제도,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이런 사회신분제도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라졌지만 인도에서는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뿌리 깊은 인도의 사회신분제도, 즉 카스트 제도 속에서 굳건히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고 천대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었던 사회제도였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문명화가 이루어지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빠른 속도로 없어졌다. 교육이 이러한 신분제도가 사라지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문명화가 덜 된 사회일수록 이런 신분제도가 유지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생활의 근간이 되었던 신분제도는 인간의 본성마저 참담하게 짓밟았다.

이 책의 지은이 나렌드라 자다브는 인도의 경제학자이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인도중앙은행 수석경제보좌관을 지냈으며 국제통화기금 등 세계기구에서 활동하였다. 이 책이 출간될 즈음에는 인도의 유명 대학 중 하나인 푸네 대학의 총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세계 언론에서는 그를 향후 인도를 이끌어갈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인도에서 가장 미천하다고 하는 달리트 출신이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 보면 네 가지 등급의 신분이 있다. 가장 상층의 브라만과 그 아래에 있는 크샤트리아와 바이샤, 그리고 노예계급인 수드라가 있다. 나렌드라 자다브의 조상들이 속한 달리트는 이 네 개의 계층에도 속하지 못하는, 즉 노예계급인 수드라보다도 낮은 계층이다.

기원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힌두경전 <리그베다>는 인간의 계급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언급하였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 푸루샤가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창조했는데, 푸루샤의 입은 사제인 브라만이 되었고 팔은 군인계층 크샤트리아가 되었다. 허벅지에서는 상인계급 바이샤가, 두 발에서는 노예인 수드라 계층이 탄생하였다.  이 네 계급은 색깔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르나 제도, 곧 사성제라고 불린다. 그리고 사성제에 들지 못하여 '아웃 카스트'라고 불리는 불가촉천민이 있었다.  그들은 수드라보다 더 낮은 최하층민이었다.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김영사, 2007년 6월, 9쪽.

이런 인도의 사회신분제도는 인도인의 상당수가 믿고 있는 힌두교의 경전에 나와있기 때문에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지난 3500년 동안 이를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보다도 더 업신여김을 받았던 달리트 사람들. 어떻게 그들 중에서 인도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인정 받는 사람이 나올 수 있었을까.

1950년 인도 헌법에서는 이런 사회신분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했던 제도가 하루 아침에 없어질 수 있겠는가. 인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런 신분제도가 존재했고 생활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만났던 인도 사람들 중에는 브라만 계층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행동거지와 말투에서는 이런 사회계급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달리트의 사회적 독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인도 헌법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였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교육하고, 단합하고, 궐기하라"라고 외치며 달리트 운동을 이끌었고 달리트의 정치세력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달리트를 무시하고 외면했던 간디와 숱한 충돌이 있었다. 보통 간디라고 하면 인도의 무폭력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존경 받고 있지만 달리트들에게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달리트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뿌리 깊은 힌두교의 전통을 꺽지 못하고 결국 불교로 개종하게 된다. 신도 버린 달리트는 결국 자신들의 신을 버린 것이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수백만 달리트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 중에는 이 책의 지은이 나렌드라 자다브의 아버지 다모다르 룬자지 자다브도 있었다. 이 책은 다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다모다르 룬자지 자다브와 그의 아내인 소누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살아왔던 20세기 초반의 인도는 다른 많은 아시아의 나라들처럼 큰 사회적 변혁이 있었고 그 소용돌이 속에는 힘겹게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온 다무와 소누가 있었다.

달리트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에 맞서며 살아온 다무와 소누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전통과 종교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들의 신세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암베드카르 박사가 주장했던 것처럼 끊임없이 자식들의 교육에 온 힘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 부족할 것이다. 어찌 그들의 고통과 번민을 책을 읽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막연히 알고 있었던 인도의 사회신분제도 카스트, 그리고 이를 깨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 않은 계급제도가 있었고 달리트처럼 천대 받으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지라도 그들의 삶의 조그만 부분이라도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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